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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획] 수원나눔의집 25주년의 기억 - 민들레 홀씨가 톡 날아 앉은 자리
    나눔의집 이야기/2023년 하반기 소식지 2024. 7. 9. 10:25

    민들레 홀씨가 톡, 날아 앉은자리

    글. 정일용 신부 

    (수원나눔의집 원장 사제)

     

    수원나눔의집 25년의 기억

    (교회의 싸앗)

     

    성공회 나눔의집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낮고 가난한 마을로 뿌리를 내렸습니다그것은 늘 언제나 더 낮은 곳을 향해 자신을 흘려보내는 하느님의 마음이었습니다. 수원나눔의집은 1997IMF로 인해 삶이 무너진 이들과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나눔의집의 형성과는 조금 다르게 수원나눔의집은 성공회 수원교회의 사회적 관심이 첫 씨앗이 되었습니다.

     

     

    수원교회가 뿌린 씨앗 [1998년부터]

     

    1998, 1999년 수원교회의 주보를 살펴보면 그 당시에 수원교회의 성직자와 신도들이 얼마나 나눔의집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마치 어미가 아기를 키우듯 정성스레 보듬었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수원나눔의집 성립과정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IMF였습니다많은 사람들이 직장을 잃고 목숨을 끊었으며 가족 공동체가 해체되는 시점에 수원교회는 마땅히 교회가 사회적 아픔에 함께해야 할 것을 결의했었어요. 수원시청에서 대형교회에 IMF의 문제를 함께 나누고자 요청했지만 대답은 없었고 수원교회는 자발적으로 참여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이 원활하지는 않았어요.‘사회복지에서 해야 할 일을 왜 교회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들이 있었고 그 불신을 이해시키는 과정 끝에 드디어 우리는 수원나눔의집 축복식(1999년 가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 놀라운 모든 과정은 당시 수원교회의 애정과 서울교구와 남부교무구의 후원, 그리고 수많은 교우들의 기도와 봉사, 후원의 결실이었습니다.”

    (이명호/수원교회)

     

     

    아이들에게 핀 민들레 홀씨[1998, 1999. 그리고 현재]

     

    수원교회로부터 시작한 나눔 활동은 소외된 아이들의 돌봄과 노숙자사업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노숙자사업은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못했지만 그 경험은 훗날 지금의‘수원노숙인다시서기센터’의 토대가 되었고, 지역 아이들에 대한 따듯한 돌봄은 2023년 현재까지 신나는 공부방 지역아동센터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IMF이후 깨어진 가정이 많았습니다. 부부가 맞벌이를 해야 할 상황에서 아이들은 방치되어 있었고, 수원교회에서도 세상의 아픔에 동참해야 한다는 뜻이 모아졌습니다그래서 지금 가정에서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이 누구인지를 살폈습니다. 매교동과 세류동 근처의 초등학교를 찾아다니며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파악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발견한 수 없는 사각지대의 아이들은 동사무소를 다니며 명단을 채워나갔고 팔달구청을 방문하여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픔과 외로움에 몰려있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원교회에서의 모금운동과 지역 봉사자들의 노력으로 작은 공간을 마련했고, 신나는 집(현재 신나는 공부방 지역아동센터)이 문을 열게 되었지요.”

    (김병내 신부)

     

     

    세류동에 자리 내린 민들레 홀씨[2000-2003]

     

    누구에게나 첫사랑의 기억은 잊을 수 없지요. 저에게 있어서 수원 나눔의집은 첫사랑이었습니다. 수원나눔의집은 서울교구의 다른 나눔의집과는 달리 수원교회에서부터 시작되었고, 그때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고, 봉사하며, 후원해 주신 수원교회의 모든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수원교회의 교우분들도 저에게는 목회활동의 첫사랑이었습니다.”

    (임영인/수원나눔의집 첫 발령사제)

     

    제가 처음 수원에 와서 집을 구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 원장이셨던 임영인신부님께서 나눔의집에 공간이 있으니 사용하라고 하셔서 한 1년 동안 나눔의집 2층에서 신혼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때는 여기 동네가 좀 시끄러웠어요. 누군가의 취한 고함소리, 유리창 깨지는 소리, 남편의 주먹을 피해 나눔의집으로 도망쳐온 여인, 부모로부터 방치된 아이들 등. 당시 나눔의집은 이런 분들의 피난처가 되어주었고 그들의 아픔을 수용해 주었습니다. 그들이 나눔의집에서 만나는 아주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 기억에 많이 납니다.”

    (이종장/수원나눔교회 신자회장)

     

     

    신앙으로 피어난 홀씨 [2000~현재]

     

    모든 나눔의집에는 신앙공동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신앙공동체는 나눔의집이 단순한 사업이나 활동 중심의 공간이기 이전에 먼저 우리의 활동을 하느님의 빛 가운데 성찰하고 보다 선한 길을 찾도록 우리를 이끌어주는 귀한 존재였습니다.

     

    “나눔의집이 가지고 있는 선교정신과 저의 개인적 소명이 잘 맞았습니다. 누군가와 나누고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이 단순한 시혜를 넘어 나를 살리고 제 삶을 바로 잡아 주었습니다내 작은 기여를 통해 주위가 바뀌고 주변의 사람들이 변화되는 것에 감사하게 되고 그 활동을 통해 내 스스로의 삶도 충만해졌습니다.”

    (임희봉/수원나눔교회 사제회장)

     

    살아가면서 가장 아름다운 일은 누군가의 배경이 되어주는 일입니다.

    안도현

     

    저는 지난 5년간 수원나눔의집을 액자에 담긴 한 폭의 그림처럼 여겼던 것 같습니다이미 탄탄하게 지어진 건물을 대하듯, 있는 그 자체가 당연한 곳으로 생각했습니다마치 어린 아기가 자기가 받아왔던 깊은 사랑을 당연하게 기억 못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무수한 사람들의 정성과 애씀과 기도로 이루어진 수원나눔의집입니다.

     

    특별히 성공회수원교회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눔의집들은 성공회 지역교회와 소통하는 기능을 많이 상실했습니다. 나눔의집의 뿌리는 교회입니다. 기관이나 센터를 만들려 했던 것이 아니라 새로운 교회, 대안적인 신앙공동체에 대한 관심에서 시작된 나눔의집이라는 사실을 모두가 꼭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성공회의 무수한 교인들의 기도와 관심이 우리 나눔의집을 키운 선한 자양분이었음을 잊지 말고 좀 더 성공회 지체들과 연대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해야겠습니다..

     

    나눔의집이 자신의 뿌리를 신뢰하고 인정할 때, 대한성공회의 모든 지체들이 나눔의집 활동을 긍정하고 응원할 수 있겠지요. 그것이 앞으로도 오랜 시간 우리를 이끌어주는 소중한 등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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