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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편지] 당신이 필요합니다 - 수원나눔의집 원장 정일용 신부나눔의집 이야기/2023년 상반기 소식지 2023. 6. 27. 16:52
얼마 전에 나눔의집 어르신들을 모시고 봄나들이를 다녀왔는데 날씨가 좋지 않았어요.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선생님이 “다음에는 화창한 날에 모시고 갈게요.”라며 약속을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어느 할머니께서 작은 소리로 속삭이시네요.
“그게 마음대로 되나?”
그렇지요! 날씨는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예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로 우리는 속상해하고 우려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도 있습니다. 좀 더 친절하고 상냥하게 가족을 대하는 일, 지금 당장 눈을 감고 걱정되는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는 일. 물론 이 또한 크고 작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다만 마음먹으면 되는 일들도 오롯이 혼자의 힘으로 풀어낼 영역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전에 나눔의집 어르신들과 목욕나들이를 자주 갔었는데요. 어르신들의 등을 밀어드리는데, 주름 가득한 등에서 그분의 삶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은 자신의 등을 볼 수가 없지요. 나는 볼 수 없는 곳, 내 존재의 일부분이지만 내가 손댈 수 없는 공간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필요합니다.
내가 당신에게 내 등을 맡길 때, 나는 조금 더 따뜻하고 온전해집니다. 목욕나들이의 백미는 자신의 등을 내어 주신 바로 그 어르신께서 저의 등을 밀어주는 순간입니다.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서로에게 내어 주고, 서로가 내어 받으며, 서로가 서로를 구원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손길이 필요해요.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등을 보이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래서 당신이 꼭 필요합니다!
정일용 (수원나눔의집 원장사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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